전주재발견 현장답사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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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문화사랑회 www.okjeonju.net 와 전주역사박물관 http://www.jeonjumuseum.org/ 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전주재발견 현장답사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호남선비문화의 역사 라는 주제로 전북과학대학 유종국 교수의 해설과 함께 무성서원, 도계서원, 소쇄원, 필암서원 을 다녀왔습니다.


오전 아홉시에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이번 답사에는 43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오랫만에 간 전주역사박물관은 새로운 입구와 주차장을 마련했더군요. 그 전에는 진입로도 좁고 주차장도 좁아서 국립전주박물관에 주차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시민들이 좀더 편안하게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오늘 해설을 맡으신 전북과학대학의 유종국 교수님은 차 안에서도 도착지에서도 열정적이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먼저 서원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서원은 선비들을 교육하는 사립 고등교육기관입니다.
서당이 사립초등교육기관이고 향교와 성균관이 국가 교육기관이었던 것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향교의 경우 대성전을 두어 공자를 배향했던 반면 서원은 우리나라의 선현들을 배향했습니다.

서원은 이와 같이 선현배향과 후학 양성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했던 곳인데요, 서원의 가장 안쪽에 사당을 두고 중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당을 두었고 그 양쪽으로는 기숙사(동재와 서재)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바깥 쪽에 문루가 있었는데 문루는 출입문의 기능을 수행하였고 2층으로 된 문루의 경우에는 강학이나 휴식 공간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서원 중에는 사액서원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사액서원이란 임금에게 현판을 하사받은 서원을 이르는 말로, 임금은 현판만 하사한 것이 아니라 학전(學田 : 서원에서 관리하는 논과 밭)과 노비를 하사하고, 또 서원의 학전에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서원의 노비는 군역을 면해주는 특혜까지 주어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뒷받침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원은 조선 말기로 갈수록 그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요, 서원을 중심으로 한 지방 사림과 조정의 실력자들이 결탁하여 지방 관아의 목사도 어찌하지 못 할 힘을 휘두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너무 많은 사액서원이 생겨 군역과 세금에도 영향을 받게 되자 흥선군이 서원철폐령(1872년)을 내리게 됩니다. 이로 인해 수백 개에 달했던 서원들 중 47개 서원만 남겨 놓고 모두 철폐되었습니다.

호남에서는 주로 태인, 고부, 담양, 장성을 중심으로 서원이 많았고 이로 인하여 향촌사회에 학문이 널리 보급되었고 태인에는 인쇄소가 발달하여 여러 서적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서원철폐령으로 호남지역에서는 장성의 필암서원, 태인의 무성서원, 노성의 노강서원만이 남게 되었다 합니다.

오늘 찾은 곳은 그 중에서 태인의 무성서원과 장성의 필암서원, 그리고 철폐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도계서원입니다. 그리고 더해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담양의 소쇄원도 같이 찾았습니다.

서원들의 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성서원의 문루인 현가루입니다.

도계서원의 문을 안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필암서원의 확연루입니다.


다음은 강당입니다.
무성서원의 강당입니다.

도계서원의 강당인 도계서당입니다.

필암서원의 강당인 청절당입니다.

문과 강당을 살펴봤는데 서원마다 규모와 모양이 다르네요.
무성서원의 경우 건물 몇 채가 헐리고 일반집이 들어섰고 도계서원의 경우 철폐 후 헐리고 사당으로만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소쇄원의 제월당입니다.
건축가 김수근씨가 몇 달씩 머물기도 했다고 하네요.

소쇄원의 광풍각입니다.
대학 때 하룻밤 잤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쇄원 해설사 분이십니다.

다음에 서원별로 정리해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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